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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야기
짤은 내용과 '아마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오늘날 5월 1일 노동절은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축제일로 지정돼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채택한 나라보다 노동절을 휴일로 정한 나라가 더 많다고 하니, 그 위상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5월 1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 것은 그 역사가 7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노동권이 세계적으로 좋기로 유명한 독일에서도 1933년 이전까지는 노동절이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 8월 11일도 국가 차원의 명절이 되지 못하고 제국의회만의 행사로 그치고 말았으니, 노동절이야 말할 것도 없었겠지만요(...) 그런 노동절을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경일로 정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 때였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 후 5월 1일을 '국가노동절'로 정합니다. 노동절을 국가 단위로 축하하는 명절로 승격한 것이지요. 종래 노동절은 노동조합과 좌익 단체의 기념 데모와 행진, 정치연설 등으로 상당히 '전투적'으로 치러졌는데, 히틀러는 노동절을 국가기념일로 축하하면서 "계급갈등의 상징, 끝없는 불화와 투쟁의 상징이 다시 민족적 대단결과 봉기의 표상으로 되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계급 갈등을 억누르고 민족 구성원 간의 총화를 추구하던 나치당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노동절을 휴일로 정한 것은 나치즘 운동에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서 있던 셈이지요. 히틀러 정부는 첫 국가노동절 기념식의 슬로건을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자를 존중하라"로 정하고 베를린 남부의 템펠호프 들판에서 대대적인 축하대회를 열었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기념대회에는 주요 기업에서 파견된 노동자 대표단과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도 참석했습니다. 행사는 히틀러의 연설과 축하 공중비행, 그리고 야간 조명쇼와 불꽃놀이가 개최돼, 매머드급 축제로 펼쳐졌습니다. 당시 괴벨스 선전부장관은 이 광경을 두고 "예전에 우리는 이날에 기관총의 소리와 계급투쟁의 함성, 증오의 인터내셔널가를 들어야 했지만, 히틀러 정부의 첫 해부터 독일 국민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으로 이 자리에 뭉쳤다."라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히틀러는 1933년, 노동절을 대대적인 축제로 기념하면서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노동자의 지지를 끌어들이고, 경축 이벤트로서 독일 민족의 총화단결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지만.... 그런 연출은 어디까지나 일회성 쇼에 불과했다는 게 함정입니다. 여러분 이거 Das~~~~~ 행사 다음날인 1933년 5월 2일, 히틀러는 돌격대를 보내 독일의 주요 노동조합 사무실을 점거하고 나치당 산하 독일노동전선으로 모든 노동단체를 통폐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당연히 노동조합의 재산들도 나치당에 압류되었지요(...) 당시 독일 노동조합은 단순히 직공들의 투쟁공동체를 넘어 학교, 여가시설, 공동주택, 병원 등 다양한 후생복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은행까지 갖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독일에서 노조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과 교육을 향유할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나치당에 빼앗긴 겁니다.(...) 그리고 1934년, 히틀러 정부는 5월 1일을 독일 국민의 국경일로 변경하고 독일 민족의 최대 국경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게르만 민족은 전통적으로 5월 1일을 '봄 축제'로 기념했고, 메이폴을 세워 그 밑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새 봄을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고래의 민족 풍습을 끌어와서는 노동절의 원래 의미를 지우고 전통문화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이상해요 2022.06.09 추천 0 조회 50348
지난 2월 4일은 1992 베네수엘라 쿠데타 발발 3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80년대 유가 하락으로 외환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정권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국내 생산 석유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줄이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의 경제정책을 펼쳐 민중들의 큰 원망을 샀습니다. 특히 대중교통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유가보조금 지원 중단이 페레스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크게 부추겼는데, 보조금이 끊기면서 주요 버스회사들이 운임을 2배 가까이 인상하면서 소시민의 생활에 큰 지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베네수엘라 시민의 주된 통근수단이 버스였기에, 버스운임의 폭등은 민생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책이었던 셈이지요. 이에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페레스 정권의 퇴진을 부르짖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는데, 이를 본 페레스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시위를 무력 진압, 약 2천 여 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무렵 반정부 시위와 그에 대한 군의 진압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마비되고 파괴된 내부유통망과 교육시스템이 2000년대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쳐 정규 국민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년이 크게 늘어날 정도였습니다. 이 변란을 일러 카라카소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좌파 성향의 일부 소장파 군인이 페레스 정권의 퇴진을 기도, 1992년 2월 4일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3천 여 명의 병사가 가담한 이 쿠데타는 주요 관공서를 점령하는 등 성과를 보이는 듯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정부군의 반격에 열세에 몰리고 맙니다. 이에 쿠데타 사령관은 스스로 항명을 거두고 쿠데타를 중지할 것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 당시 쿠데타 실패를 인정하며 기자들 앞에서 한 공개연설은 기성 정치체제에 큰 회의를 품고 있던 민중들의 호응을 샀고, 이는 새로운 공화국을 세우자는 국민적 운동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령관도 페레스 정권 퇴진 후 복권됐으며, 이후 199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대통령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룹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쿠데타를 이끈 주역이 다름 아닌....   ???? : 쏘쎨리즘!!!!! 바로 우고 차베스(...)였다는 겁니다 아래 영상은 지난 2월 4일 있었던 쿠데타 기도 30주년 기념행사의 모습입니다. 2012년 20주년 때는 차베스가 직접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었는데 차베스보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마두로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국가경제 규모가 1940년대로 회귀한 베네수엘라의 막가파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규모 민중집회 수준으로 행사가 열렸습니다 40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마두로 대통령이 목청 높여 연설을 하는데 중간중간 차베스 초상화와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나저나 차베스가 인기스타는 인기스타인 모양입니다 죽어서도 国神 대접을 받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70lO8fMjsTQ (영상이 안 보이는 경우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이상해요 2022.06.08 추천 0 조회 4657